폴 오스터『왜 쓰는가?』

왜 쓰는가? - 4점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열린책들
폴 오스터는 '달의 궁전'으로 처음 접했는데 몽환적인 글이 꽤 취향에 맞았었다. 책장을 둘러보다가 얇은 두께를 보고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다 싶어서 집어 펼쳤다. 그가 말하는 '글을 쓰는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세월은 나에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있으면, 언젠가는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내 아이들에게 즐겨말하듯, 나는 그렇게 해서 작가가 되었다.
왜 쓰는가?p.41

내게 가슴 시린 글은 이 책의 주제인 왜 쓰는가?가 아니라 살만 루슈디를 위한 기도였다.

나는 아침마다 그를 위해 기도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책을 한 권 썼다는 이유로 목숨의 위혐을 받고 있습니다. 책을 쓰는 것은 내 일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변덕과 운명의 장난 때문에 나도 그와 같은 처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니라 해도 내일은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같은 클럽에 속해있습니다. 단독자, 은둔자, 괴짜들, 작은 방에 틀어박힌 채 종이 위에 글을 써넣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인생의 태반을 보내는 자들의 비밀 결사인 것입니다. 그것은 기묘한 생활 방식이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만이 그것을 천직으로 선택합니다. 그것은 너무 힘들고, 대가는 형편없고, 실망이 거듭되는 생활방식이어서, 어쩔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작가들은 다양한 재능과 야심을 가지고 있지만, 제 몫을 하는 유능한 작가라면 모두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할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살만 루슈디를 위한 기도 p.87-88
폴 오스터는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고, 대가는 형편없고, 실망이 거듭되는 생활방식'이라고 말하는 글쓰기. 그럼에도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글을 순식간에 삼켜버리곤 자근자근 밟아대는 나같은 독자. 그리고 살만 루슈디처럼 목숨을 위협받는 건 아니더라도 말할 자유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 나라.

내가 폴 오스터 팬이 아니라서 마음이 좁은건가 싶지만 두 줄의 왜 쓰는가?를 위해서 두꺼운 표지를 두르고, 속표지 안에 금박을 입힌 책을 내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 아마존의 나무들에게 사과해!;; 발췌한 두개의 에피소드 말고는 읽는안 이걸 왜 출판한거지?라고 머리속 한가득 물음표가 차오르는 수필?에세이?가 들어있었다. 간단히 서점에서 서서 읽기엔 괜찮지만 사서보기엔 아까운 책이었다. 
2009/08/11 23:46 2009/08/11 23:46
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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