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버터처럼 녹아내린 몸을 추슬러서 가려고 벼르던 나라 요시토모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회를 혼자 간 건 처음이었는데, 영화처럼 혼자 보러 가는 습관을 붙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역시 나는 혼자 놀기 유전자가 있나 보다. 혼자서 한 바퀴 천천히 구경한 후에 우연히 시간이 맞아서 설명을 들으며 한 바퀴를 보고 다시 한번 구경하고 나왔는데 혼자가 아니었다면 미안해서 이렇게 세 바퀴나 돌며 볼 수 없었을 테니까.
입장하자 서울 전시를 위해서 나라 씨가 직접 자재를 골라서 지었다는 서울하우스가 나를 맞았다. 내부에는 물감 마르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온 쌍둥이가 걸려 있었다.
「서울하우스」는 작가의 작업실을 옮긴 거라고 하던데 자세히 둘러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예술가와 담배와 커피는 서로 뗄 수 없는 것이라는 편견을 증명이라도 하듯 놓여있는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와 커피 흔적이 선명한 커피잔이 특히 그랬다. 조금 떨어진 곳에 KENT 담배가 놓여있었는데 나라 씨는 KENT를 피우는 걸까.
그 외에 기억나는 것은 오른쪽 벽에 붙어있던 즐거운 표정으로 북을 치고 있는 파란 원피스의 소녀의 그림과 왼쪽, 오른쪽으로 눈동자와 꼬리를 움직이는 고양이 벽시계 그리고 왼쪽 벽에 붙어있던 작게 그려진 하얀 강아지와 찻장 위쪽에 붙어있던 활짝 웃는 아이의 사진.
「평화마크(2004)」에 꾸깃꾸깃 들어있는 인형을 보며 '아프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2층으로 향했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되어있는 「서울하우스」의 2층은 로댕갤러리를 내려다보게 되어있었는데 바로 앞에 있는 「지옥의 문」과 눈을 마주치게 되어 깜짝 놀랐다. 총총 내려오니 보이는 「세계 평화(1995)」. 다들 작업실만 보던데 이것 못보고 내려온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나만 그럴 뻔 했던 걸까; 스케치북을 찢은 모양 그대로 전시되어있었는데 왕관을 쓰고 북을 치는 강아지가 얼마나 귀엽던지. 방안에 붙어있는 북 치는 소녀와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다.
「서울하우스」는 군데군데 훔쳐볼 수 있도록 구멍이 나 있었는데 다들 구멍 속에 렌즈를 넣고 열심히 찍길에 나도 기다려 보았는데 다들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구멍의 위쪽에 나라 씨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왠지 '참 잘했어요.'라는 느낌의 도장이다.;
많은 사람을 쪼그려 앉게 했던「작은 순례자 (2005)」. 필름카메라 느낌이 나는 사진이 마음에 든다. 설명에 의하면 나라 씨가 자주 그리는 고양이와 강아지에 이은 양의 이미지라고 한다. 쓰다듬고 싶은 폭신폭신한 느낌. 좋다! 작은 순례자 반대편에 있었던 「머리(1998)」는 7개의 머리 중에서 단 하나만의 머리만 눈을 뜨고 있었는데 어떤 의미였을까.
본격적인 전시회의 시작. 「훌라훌라정원」은 꽃밭에 소녀들이 책을 펴고 엎드려 있는 것을 여러 마스크가 쳐다보고 있었는데 정원을 먼저 만들고 마스크는 3년 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정원에는 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퀴가 달린 장난감이 놓여있었는데 「서울하우스」에도 그런 장난감이 있던데 나라 씨는 바퀴 달린 장난감을 좋아하는 걸까.
「외로운 강아지」를 위한 드로잉 연작은 도톰한 강아지발♡과 소녀, 눈감은 강아지와 조금은 놀란듯한 우주를 유영하는 소녀가 조금 무서운 눈매가 올라간 나라 씨의 작품과는 달리 따끈따끈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긴 긴 밤」과 「기운 내(2001)」. 나라 씨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졌었구나. 캄캄한 어두운 곳을 가늘고 높은 나막신을 신은 채 작은 등불만을 의지한 채 걸어가는 것으로 느낄 정도로.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꾹 참고 웃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졸업 후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나를 토닥여주었다.
「카불 수기 (2002)」는 나라 씨의 사진들이었는데 나도 자주 찍는 신발 사진이 많았다. 나는 신발을 신은 사람들의 다리를 찍는데, 아예 신발만 찍은 사진도 있는 것을 보고 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라며 속으로 좋아했다. 흔들린 사진이라도 미소가 담긴 사진은 챙겨두는 점도.
「당신은 우주비행자(2004)」의 환상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름은 없지만 「훌라훌라정원」이 있던 전시관 마지막 높은 곳에 걸려있던 제목 없는 못박혀 날지 못하는, 아파하기보단 슬퍼하는 소녀가 날아갈 수 있게 된듯해서. 나도 날 수 있을까.
나라씨의 드로잉은 여러 그림의 초기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날려서 쓴 일본어로 집 밖으로 처음 나간 것이 6살이었다던지 하는 내용의 낙서가 섞여 있어서 귀여웠다. 새삼 일본어를 배운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할 정치(2003)」이나 드로잉이 전시되어 있던 건물 안의「핵무기 반대」와 같은 작품은 나라 씨의 팬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진 작품이었다. 엽서 6종 세트에 「젠장 할 정치」가 있었으면 5000원이라도 샀을텐데……. 「기운내」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지만.
가장 마지막에 전시되어있었던 작품은「안녕이라고 하지 않겠어요(1994)」그래요. 손을 흔들어주는 소녀 뒤엔 나라 씨가 있는 거겠죠. 나도 안녕이라고 하지 않을게요, 나라 요시토모씨♡
무슨 탁상시계가 23만 5천 원이나 하는 거야. 나빠! 로댕갤러리.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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