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초콜릿 공장』 소설책을 찾으려고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그 책은 없었기에 검색 결과 중에 끌리는 이름이기에 집어들었던 이 책은 몇 년 전에 봤던 일본드라마 〈아르제논에게 꽃다발을〉의 원작이었다. 소설의 원제는 『앨저넌에게 꽃을』인데 번역하면서 바뀐 이름덕택에 이렇게 다시 인연이 닿게 되다니 신기하다.
〈아르제논에게 꽃다발을〉에서 이름이 전부 일본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페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빼면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소설에서는 찰리 고든인데 자꾸 유스케 산타마리아의 하루가 생각나서 새삼 접하는 순서라는 것이 중요하단 걸 느꼈다.
▶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내용 보기
흔히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하지만 찰리가 수술을 한 후에 느꼈던 것은 자신이 무시당해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모멸감, 자신이 속해있던 빵집에서 쫓겨나고 친구가 없는 데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같은 어두운 감정들이었다. 과연 지능이 높아진다는 것은 지능이 낮다는 것보다 행복한 것일까?
이 소설은 찰리가 적는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맞춤법을 잔뜩 틀리고 쓰기 힘들어하며 손으로 쓰던 찰리의 일기는 수술 이후엔 워드 프로세서를 통해서 철학적 고민을 담아 맞춤법에 맞고 어려운 단어로 바뀌어나간다. 그리고 수술의 후유증으로 점점 일기는 단순해지고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늘어나고 마지막에는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얘기와 함께 앨저넌의 무덤에 꽃을 가져다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끝난다.
주인공인 찰리보다 먼저 수술을 받은 앨저넌은 찰리의 퇴행 전에 죽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퇴행 이후의 계획에 대해 듣고 "소각로 행은 아니군요."라고 말하는 찰리의 대사에 나도 어쩌면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그냥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지능이 낮았다가 높아졌고 곧 퇴행할 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은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얀 생쥐 앨저넌이었다.
원작에서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페이의 등장이었다. 왜 인간 남자들은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자(앨리스 키니언)를 두고서 아무 의미도 없지만 섹스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 여자(페이)가 필요한거지? -_- 〈아르제논에게 꽃다발을〉에서 그 내용을 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시 지능이 떨어진 찰리는 전에 있던 빵집으로 돌아왔고, 전처럼 조금은 괴롭힐지는 모르지만 "그애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잃었던 친구를 다시 얻게 된다.
높은 지능과 외로움 그리고 낮은 지능과 친구. 어느 쪽이 진정한 행복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처럼 사람에 대한 신뢰감에 대해 회의하게 되는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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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온당하지 않아, 늘 그랬듯이. 우리는 늘 자네를 중요하게 다뤄왔고, 자네를 위해 가능한 일은 뭐든지 해주지 않았나?"
"뭐든지 해주었지요,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만 빼고는. 당신은 자주 장담하지 않았소? 실험 전의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왜 그렇게 말하는지 나는 알아요. 왜냐하면 말이오, 만약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면 당신은 나를 창조한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당신은 내 군주, 내 주인이 되기 때문이오. 당신은 내가 한 시간마다 감사를 표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만, 뭐, 믿든 안 믿든 나는 감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말이오, 나를 위해 당신이 해준 것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나를 실험용 동물처럼 다룰 권리는 없다는 거요. 나는 인간이오. 그리고 찰리도 그랬소. 연구실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말이요. 충격을 받은 모양이군! 그렇겠지, 내가 줄곧―수술 전에도―인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갑자기 발견했으니까. 르기고 그건 IQ가 100이하인 인간은 돌아볼 가치도 없다는 당신의 신념을 뒤집는 것이니까. 니머 교수, 당신은 나를 볼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나요?"
(작업은 끝났고 데이터는 갖춰졌다, 276쪽)
"세상에 둘도 없는 기회가 자네한테 의미하는 것이 그것뿐인가? 지능은 자네한테서 세상에 대한 신뢰, 동료에 대한 신뢰를 파괴해 버렸어."
"그건 반드시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겠군요." 나는 온화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지능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배웠어요.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이 위대한 우상이 되어 있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간과한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인간적인 애정의 뒷받침이 없는 지능과 교육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말이오."
나는 가까이 있는 찬장에서 다시 마티니 잔을 집어들며 설교를 계속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지능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자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식을 구하는 마음이 애정을 구하는 마음을 배제해 버리는 일이 너무 많아요. 이건 극히 최근에 발견한 건데, 나는 이것을 하나의 가설로 제안하고 싶습니다. 즉 애정을 주고 받는 능력이 없는 지능은 정신적, 도덕적인 붕괴를 초래하고, 신경증 내지는 정신병까지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인 목적에서 그 자체에서 흡수되어 그 자체에 관여할 뿐인 마음, 인간관계를 배제하는 마음은 폭력과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거지요.
내가 정신지체자였을 때는 친구가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도 없어요. 물론 나는 분명히 많은 사람을 알고 있지요. 정말 많은 사람들을.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한 사람도 없어요. 빵가게에서 일할 때는 그렇지 않았지요. 지금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려는 친구는 어디에도 없고, 내가 무엇을 해주고자 하는 친구도 없어요."
(작업은 끝났고 데이터는 갖춰졌다, 277~8쪽)
『FLOWERS FOR ALGERNON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
지은이 대니얼 키스
옮긴이 김인영
펴낸곳 동서문화사
초판 발행 2004년 3월 1일
ISBN 89-497-0269-X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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