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블로그에서 책 제목을 보고 제목에 끌려서 집어들게 된 책. 이 책은 「아이슬란드의 혹한」,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그리고 「메두사에 관한 소론」, 총 3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혹한」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orz
하지만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과 「메두사에 관한 소론」은 통하는 얘기로 누구나 자주 느꼈을 그런 일을 풀어내는 것이 마음에 와닿았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외국어를 배울 때 외국어를 우리 말로, 우리 말을 외국어로 바꿀 때 딱 들어맞는 단어가 혀끝에서 맴도는 그 기분. 그 때 이 세계가 아니라 단어를 찾아 어딘가로 떠나있는 내 시선. 그리고 그것을 찾아냈을 때의 후련함과 약간의 허탈감.
글을 쓰는 사람과 말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고 있었으니 도저히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이름은 그녀의 입술 주변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데 있었고, 느껴지는데도, 그녀는 이름을 붙잡아서 다시 입속에 밀어넣고, 발음할 수가 없었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37쪽)
그는 성을 떠났다. 엘Hel을 벗어나 지상을 향해 올라왔다. '엘'은 노르망디의 옛 주민들 사이에서 지옥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음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지옥이 바로 이 세상을 가리키는 이름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45쪽)
그는 몸을 일으키면서 다시 이름을 외워보려고 했다. 이름은 거기, 아주 가까운 곳에, 바로 그의 혀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의 입 주위에 안개처럼 떠돌고 있었다. 입술 끝에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더 멀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아내에게 그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이름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45-6쪽)
콜브륀이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이드비크 드 엘이 당신의 이름이지요."
그러자 영주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천지가 캄캄해졌다. 모든 게 꺼졌다. 지금 내가 말을 함으로써 꺼버린 이 촛불처럼.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끈다.
어둠속을 내닫는 말발굽 소리만 들렸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57쪽)
오르페우스가 지옥에서 올라오가다, 사랑하는 아내가 뒤에 있는지, 자신을 따라 잘 올라오는지 확인하려고 문득 뒤를 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름nom을 찾기 위해 빠져드는 정신 집중은 되살아나는 감동을 기억이란 거짓된 형태로 석화시키고, 이름의 귀환을 오히려 마비시킨다. 정신 집중은 그것이 추구하는 바에 족쇄를 채운다.
알고 있는 단어를 빼앗김으로써 겪게 되는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내재된 인류의 망각이 기세를 떨치게 될 때의 경험이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사고의 우발적 특성, 정체성의 취약한 본성, 기억의 무의지적 소재, 그리고 오직 언어로만 짜여진 그 직물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한께와 죽음이 처음으로 뒤섞일 때의 경험이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 특유의 궁핍함이다. 후천적으로 획득된 어떤 것 앞에서 느껴지는 궁핍함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언어가 우리 내면의 반사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은 눈으로 보듯이 입으로 말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메두사에 관한 소론」 65-6쪽)
모든 꿈은 그 자체로 결핍이다. 그것은 비현실의 젖 빨기이다. 그것은 삼중의 과거, 즉 존재했던 적이 없는 과거, 존재했던 과거, 존재했던 과거, 거부된 과거를 기억하는 기묘한 침대이다.
(「메두사에 관한 소론」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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